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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중앙·세이히

덴쇼 견구(遣歐) 소년 사절 상

・이 상은 쇼와 57(1982)년에, 덴쇼 견구(遣歐) 소년 사절이 로마로 파견된 덴쇼 10년(1582)から, 400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이 파견 계획은 일본의 포교 책임자였던 발리냐노 신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진행되었고, 오무라 스미타다, 아리마 하루노부, 오토모 요시시게 등 그리스도인 다이묘 3명의 사절로서 소년들 4명이 선발되었다.
・사절단 정사(正使)는 이토 만시오(15세・오토모 요시시게의 사자), 지지와 미겔(14세・아리마 하루노부의 사자), 부사(副使)는 오무라의 사자인 하사미 출신 하라 마르티노(13세), 사이카이시 나카우라 출신 나카우라 줄리앤(15세)이다.
・나가사키를 출항한 소년들은 마카오를 거쳐서 인도양을 건너서 2년 반의 기간을 들여서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로마 역사상 최대급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로마 교황을 알현하고 그리스도인 다이묘 3명의 편지를 넘겼다.
・그 후 소년들은 북부 이탈리아 각지에서 환영을 받으면서 유럽의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였고, 덴쇼 18년(1590) 7월에 나가사키에 귀환하였다.
・귀국 당시 일본은 금교 시기에 들어서 있었다. 소년들은 온갖 고난을 겪었으나 그들이 갖고 돌아온 지식과 문물은 일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관련 인명・용어(마우스를 갖다 대면 읽기 및 설명이 표시됩니다)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 히젠 아리마의 영주. 1571년에 가독(家督)을 상속하고 히노에성에 거주. 1580년에 발리냐노에게 세례를 받고 기리시탄 다이묘가 되었다. 1582년에는 사촌인 지지와 미겔을 덴쇼켄오 사절로서 로마에 파견했다. 1587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바테렌 추방령'을 발령했을 때에는 영내에서 선교사를 보호했다.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 예수회 순찰사로서 초기 일본의 그리스도교계를 지도한 사제. 1579년부터 세 차례 방일하였으며 1590년에 인도 부왕사로서 2번째 방일했을 때는 귀국한 덴쇼켄오 사절을 동반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알현했다. 일본 선교 시에 일본의 풍습에 순응할 것, 세미나리오와 같은 교육 기관을 설치할 것 등의 혁신적인 방침을 제시했다.

오토모 소린(大友宗麟)

[오토모 소린(大友宗麟)] 분고(현 오이타현)의 영주. 1551년에 방일 중인 사비에르와 만나 이후 기리시탄을 보호했다. 1559년에 규슈단다이(探題)가 된다. 1578년에 세례를 받아 기리시탄 다이묘가 되었다.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 히젠 오무라의 영주. 1550년에 아리마 가문의 양자가 되어 가독(家督)을 상속. 1561년에 영내의 요코세우라 항구를 포르투갈 선박에 개항하여 스스로 세례를 받고, 일본 최초의 기리시탄 다이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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