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らしょ こころ旅

등록 자산

시마바라·아마쿠사

시마바라성

・마쓰쿠라 시게마사가 겐나 4(1618)년부터 약 7년의 세월을 소요하여 시마바라반도 중심부의 모리다케산에 축성하였다.
・시마바라성은 5씨(가문), 19대, 253년간에 걸쳐서 시마바라 번(藩, 영지) 행정의 중심으로서 번영을 누려왔다.
・영지 생산규모 4만석(萬石) 다이묘의 성으로 치면 너무 웅대한 규모여서 민중들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워낙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제2대 마쓰쿠라 가쓰이에가 취한 억압 정치, 그리스도인에게 가해 진 박해, 이에다 식량부족으로 인한 굶주림 등 고난이 중첩되자, 더는 못 견디게 된 민중들은 1637년 시마바라・아마쿠사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이 봉기의 발단지가 바로 시마바라성이다.
・폐성(廃城)령에 따라 메이지 9(1876)년에 성 건물들은 모두 파괴 처분되었으나 쇼와 39년(1964년)에 천수각(성 중심 건물의 가장 높은 망대)가 복원되면서 귀중한 사료를 전시하는 “그리스도인 사료관”으로 거듭났다.
・그리스도인 다이묘인 아리마 하루노부를 중심으로 시마바라반도의 화려한 그리스도인 문화, 일본 전국을 진감시킨 시마바라・아마쿠사 무장 봉기 그리고 혹독한 기독교 탄압의 시대를 오늘에 전해주는 사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헤이세이 18(2006)년에(재)일본성곽협회가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명성(名城)으로 평가, 이 평가에 따라 “일본 100 명성”으로 인정하였고, 2016년에는 성 유적이 나가사키현 지정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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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마바라·아마쿠사

    페허가 된 성이었는데……

    조상 대대로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를 통치해 온 아리마(有馬) 씨가 이 지역을 떠났다. 새롭게 맞이한 영주는 일본의 운명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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