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26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며 [신도 발견]의 무대이다.
- 외국인 거주지에 사는 외국인은 그리스도교 신앙은 허용되었는데, 일본인은 여전히 금지된 상태에서 건립되었다.
- 프랑스인 선교사 프티쟝(Bernard Thadée Petitjean)신부는 성당 건설을 위한 자금마련에 고심하였다.
- 성당 안에는 프티쟝신부가 매장되어 있고 영원히 잠들고 있다.
- 프랑스에서 보내온 선물이 성당 안에 있고 세계로부터 축복 받았다.
등록 자산
오우라천주당은 일본26성인을 위해 건립된 성당이다. 그리고 성당 그 자체가 잠복 키리시탄을 위해 보내진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오우라천주당을 건립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느라 프티쟝(Bernard Thadée Petitjean)신부는 분주하였다. 그의 편지를 통해서 그 노고를 알 수 있다.
창건 당시에는 삼랑식(三廊式)의 작은 성당. 오우라천주당은 187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나가사키(長崎)에 천주당이 건립된 것을 외국인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본인의 모습이 없었다.
일본이 개항되고 나서도 여전히 허용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 신앙. 그러한 가운데 성당 건설이 진행되었다.
일본에서는 기리시탄은 사라지고 만 것일까? 회의적인 마음을 품고 지내던 신부들을 북돋우는 기적이 일어났다.
잠복 키리시탄들은 조상이 전해준 예언을 굳게 충실히 지켜왔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신부는 찾아왔다.
일본천주교를 부활시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프티쟝신부는 지금도 오우라천주당에서 잠들어 있다.
‘프랑스절’이라 불렸던 오우라천주당. 성당 안에는 프랑스와 연유가 있는 선물이 많이 있다.
세 가지 스테인드글라스가 혼재하는 오우라천주당. 그 스테인드글라스 하나 하나가 역사를 말해주는 귀중한 증언자이기도 하다.
創建当時、大浦天主堂正面にあったバラ窓を
意外なところで発見!
匿名の信者から贈られた大浦天主堂の鐘は
約1m四方のフランス製
信徒発見や放虎原殉教記念碑など、数々の大作を残す中田秀和氏は五島生まれのカトリック
구로시마(黒島)에서 처음으로 미사가 드려졌을 때의 당시 시대 상황은 기독교가 금교령 정책으로 억압을 받았을 때였다. 신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변장을 하고 구로시마(黒島)를 건넜다.
소토메(外海)에 부임해 온 드로 신부는 마을 사람들이 매우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고향 집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소토메(外海)를 위해 바쳤다.
오노(大野)성당은 일반 민가 형태로 되어 있지만 드∙로담, 벽돌을 쌓음으로써 만든 창문, 현관 앞 바람막이 등 건축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많다.
ヨハネ五島は神父の身代わりとなって殉教
その遺骨は奇跡の再会後、五島に里帰り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