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가 개항된 다음해인 1571년, 예수회 선교사의 피게이레두(포르투갈)은 동네가 형성된 곶의 끄트머리에 “곶의 교회(성 파올로 교회)”를 세웠다.
새 교회당을 증축하던 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 떨어져 해체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증•개축하고 신축하고를 반복하였고, 1601년 나가사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승천의 성모 교회당(승천의 산타 마리아 교회)”, 같은 무렵에 주교관, 콜레지오 등의 건물이 세워져, 본 교회당은 일본 주교가 안착하는 주교좌 성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편, 이에 앞서 1593년에는 일본 예수회 본부가 설치되었다.
16세기 후기에서 17세기 초엽에 걸쳐 나가사키에는 수많은 교회당이 건립되었다. 난반(유럽) 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영하는 그 모습은 마치 “작은 로마”를 보는 것만 같다고 소문이 났다. 하지만 1614년에 도쿠가와 막부가 발령한 금교령으로 인해 곶에 건립된 교회를 포함한 거의 모든 교회당이 파괴되자 그리스도인 거리 풍경은 사라지게 됐다.
1633년에 이르러서 나가사키 부교쇼(행정 사무소) 서부 사무소, 1855년에 해군 전습소, 1857년에 의학 전습소가 설립되었다. 1874년에는 나가사키현청 (2018년에 이전) 등 이 지역에는 매 시기 중요한 시설이 설치되었다.
구(舊) 나가사키현 청사 터에는 “예수회본부 터”“부교쇼(행정 사무소) 서부 사무소”“해군 전습소” 비석이 세워져, 입구 부근에는 3개 시설에 대해 소개해주는 안내판이 서있다.
※구(舊) 현 청사 터 매장 문화재 조사(~2025년도 예정)의 상황에 따라서는 비석을 직접 못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