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らしょ こころ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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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하라 성터(原城跡)

  • 나가사키 현(長崎県) 시마바라(島原)반도의 남부에 위치한다.
  • 히노에(日野江) 성(城)과 비견할 아리마(有馬)씨의 또 하나의 성(城)으로 현내 최대 규모이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시대의 특징인 성곽 석축기술이 엿보인다.
  • 아리마 씨(有馬)에서 마츠쿠라(松倉) 씨로 영주가 바뀌자 기독교를 버리라는 고문이 운젠 지옥(雲仙地獄)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순교자가 속출했다.
  • 1637년에 시마바라(島原)・아마쿠사(天草) 신도의 기리시탄 신자들이 농성했던 성(城)이다.
  • 신자들의 봉기후, 기리시탄 신자들은 없어졌지만 각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토지 복구에 힘썼다.

관련 인명・용어(마우스를 갖다 대면 읽기 및 설명이 표시됩니다)

예수회

[예수회] 로마 교황의 공인을 받은 가톨릭의 수도회.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등에 의해 1534년에 결성되었다.

시마하라 아마쿠사 봉기

[시마하라 아마쿠사 봉기] 1637년부터 1638년에 걸쳐 시마바라 반도 남부와 아마쿠사 제도의 농민들이 연합하여 일으킨 봉기. 아마쿠사 시로를 총대장으로 2만 수천 명이 참가하여 하라성에서 농성을 펼쳤으나, 막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오와리 출신.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는데, 노부나가가 죽은 후에 후계자가 되어 일본 내 통일 정권을 수립했다. 1587년에 '바테렌 추방령'을 공표했지만, 남만무역(南蠻貿易)은 허용했기 때문에 불완전한 정책이 되었다. 1597년에 프란시스코회 수도사 6명과 일본인 기리시탄 20명을 나가사키의 니시자카에서 처형했다. (일본 26성인 순교)

메다이

[메다이] 신자가 마리아 님과 성인들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지니는 메달과 같은 모양을 한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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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산과 관련이 있는 칼럼

  • 시마바라·아마쿠사

    석벽에서 보이는「견고한 성」

    오다(織田)、도요토미(豊臣) 시대에 유행한 초기 석축기술을 하라 성터(原城跡)에서 볼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까지는 성곽 건축의 과도기였다.

  • 시마바라·아마쿠사

    시마바라(島原)・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 무대

    시마바라(島原) 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에는 많은 기리시탄들이 싸웠고 남녀노소2만 6천명의 목숨을 잃었다. 하라 성(原城)은 바로 그 무대가 되었다.

  • 시마바라·아마쿠사

    페허가 된 성이었는데……

    조상 대대로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를 통치해 온 아리마(有馬) 씨가 이 지역을 떠났다. 새롭게 맞이한 영주는 일본의 운명을 좌우한다.

  • 시마바라·아마쿠사

    하라 성터(原城)에서 출토된 물건들이 말해 주는 것.

    하라 성터(原城跡)에서 출토된 물건중에는 기독교 관련 물건이 많다. 죽기 전에 신자 봉기군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 시마바라·아마쿠사

    철저히 파괴된 하라 성(原城)

    죽은 자의 부활을 두려워 하여 철저히 파괴한 하라 성(原城). 그러나 한편으로 종교를 뛰어넘어서 죽음을 애도한 사람들의 모습도 있었다.

  • 시마바라·아마쿠사

    순교라는 것은 가르침을 따르는 것.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본인 스스로 귀한 희생이 될 것을 받아들인 기리시탄들이 있었다. 지금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 시마바라·아마쿠사

    결실이 말해 주는 땅의 복원.

    막부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하라 성(原城).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하라 성(原城) 토마토는 황무지가 된 땅에서 부활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시마바라·아마쿠사

    고향의 역사를 지금 전한다.

    시마바라(島原) 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후, 아리마(有馬) 지역에는 집단 이주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착했다. 지금 종교나 근원을 넘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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