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다녔던 성당으로 가는 길
“제 조상은 소토메(外海)에서 이주해 온 최초의 신자입니다.” 다정한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이마무라 쿠니오(今村国男)씨는 드로 신부의 인도로 타비라(田平)에 최초로 이주해 온 이마무라 죠오키치(今村丈吉)씨의 증손자이다. “부모님도 매우 독실한 신자였기 때문에 집에서 성당까지 약40분 걸어 주일 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마무라씨가 초등학생이었던 쇼와(昭和)30년대(1955~1964년)의 일이다. “성당이 세워진 다이쇼(大正)시대(1912~1926년)는 히라도구치(平戸口)나 멀리 마츠우라(松浦)방면에서 미사에 참석하는 가족도 많았으며 2~3시간을 들여 다니는 신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타비라(田平)천주당이 신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 알 수 있다.
신자들이 맞이한 성탄절
아이들에게 가장 즐거웠던 것이 성탄절. 이마무라씨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신발은 이 날을 위해 새로 사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오시즈시(※ 초밥의 한가지), 조림, 찐빵과 같은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진수성찬이 밥상에 올라와 아주 맛이 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날에도 성탄절은 중요한 날 중의 하나. 모두들 구유 집을 만들고 성당 안을 꾸민다. 현재는 천주당 입구에서 정면에 서 있는 성모상에 이르는 길을 일루미네이션으로 장식하는데, 아이들도 매우 즐거워한다고 한다. 이마무라씨는 “요새는 예전만큼이나 아이들에게 성당 봉사를 엄격하게 시키지는 않습니다만 유아부터 초∙중학생에 이르기까지 20명 정도가 신부님께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희 어른들은 그 아이들을 도와줍니다. 그리고 조상들이 세운 이 훌륭한 성당과 문화를 지켜 나가는 것이 저희들의 사명입니다”라고 말하며 추억이 많이 담겨 있는 타비라(田平)천주당을 다정한 눈빛으로 응시하였다.
※네모난 나무 상자에 밥을 담아 그 위에 간을 맞춘 생선 따위를 얹고, 뚜껑으로 누른 다음 적당한 크기로 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