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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구로시마(黒島) 성당 건설을 위해 사용된 벽돌은 40만개라고 한다. 일부는 신자들이 섬에서 구워 온 벽돌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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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일본에서는 극히 드문 설교단이다. 구로시마(黒島) 성당에 남겨진 설교단에는 마르먼드 신부님이 손수 판 장식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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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구로시마(黒島)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아름다운 성당이다. 마르먼드 신부는 프랑스에서 수많은 물품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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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구로시마(黒島)에서 처음으로 미사가 드려졌을 때의 당시 시대 상황은 기독교가 금교령 정책으로 억압을 받았을 때였다. 신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변장을 하고 구로시마(黒島)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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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2년의 세월을 걸쳐 완성한 대규모의 구로시마(黒島) 성당. 헌당에 관여한 목수 중에 고토(五島)출신에 배를 만드는 목수 청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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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아리타야키 도자기 타일, 구로시마(黒島)산 화강암. 구로시마(黒島) 성당 건축에 사용된 소재로 주목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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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구로시마(黒島)에서는, 「신앙심이 깊다」를 「신코카(신앙가)」라고 한다. 신자 모두가 성모 마리아상의 그림과 로자리오, 십자가등을 매일 지니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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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마르먼드 신부가 혼신을 다하여 건축한 구로시마(黒島) 성당. 그러나 거액의 공사비로 건축은 일시 중단될 위기에 놓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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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구로시마(黒島) 성당의 특징인 아름다운 나뭇결 리브 볼트 천장. 실은 그 나뭇결은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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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멀리 해상에서 볼 수 있는 산은 항로를 통해서 전래된 다양한 종교들의 거점이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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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16세기 취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귀중한 지역. 전국시대 이후 변하지 않는 환경과 삶, 그리고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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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계단식 논 한가운데에 있는 약간 높은 산은 키리시탄 신앙이 지켜져 온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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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카미다나(神棚; 집안에 신을 모셔 놓은 감실)에 숨겨진 묵주, 할아버지가 외우는 불가사의한 기도…. 카쿠레키리시탄의 오랜 역사를 많은 분들이 알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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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키리시탄 순교지이자 성지이기도 한 무인도. 신자들은 성수를 채취하기 위하여 거센 파도를 무릅쓰고 섬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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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소토메(外海) 에는 드로 신부가 스스로 보여준 사랑의 정신을 전하고자 활동하는 이가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도로 사마(드로 님)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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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소토메(外海)에는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에도 교회로 복귀하지 않고 잠복시대 이래 지켜 온 신앙을 계속해서 지키는 카쿠레 키리시탄 조직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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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소토메(外海)에 부임한 드로 신부는 주민들이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특히 여성들이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기술을 익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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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오우라천주당은 일본26성인을 위해 건립된 성당이다. 그리고 성당 그 자체가 잠복 키리시탄을 위해 보내진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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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오우라천주당을 건립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느라 프티쟝(Bernard Thadée Petitjean)신부는 분주하였다. 그의 편지를 통해서 그 노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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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창건 당시에는 삼랑식(三廊式)의 작은 성당. 오우라천주당은 187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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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나가사키(長崎)에 천주당이 건립된 것을 외국인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본인의 모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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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일본이 개항되고 나서도 여전히 허용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 신앙. 그러한 가운데 성당 건설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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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일본천주교를 부활시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프티쟝신부는 지금도 오우라천주당에서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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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프랑스절’이라 불렸던 오우라천주당. 성당 안에는 프랑스와 연유가 있는 선물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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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같은 소토메(外海)지구에 있는 시츠(出津)성당은 전망이 좋은 곳에 세워졌는데, 오노(大野)성당은 그와 대조적으로 후미진 곳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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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오노(大野)성당은 드∙로신부가 세운 시츠(出津)성당의 공소이다. 현재로는 일년에 한번만 기념미사가 집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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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오노(大野)성당은 일반 민가 형태로 되어 있지만 드∙로담, 벽돌을 쌓음으로써 만든 창문, 현관 앞 바람막이 등 건축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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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빨간 벽돌과 빨간 아마카와(석회와 적토를 섞어서 만든 접합제).
신자들은 조개 껍데기를 원료로 만든 접착제를 사용하여 일본의 그리스도교 부활을 상징하는 천주당을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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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타비라(田平)천주당 근처에 있는 키리시탄 묘지.
귀천한 신자들은 거기서 조용히 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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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주일마다 그리고 성탄절 같은 특별한 축일에도 계속 다니고 있는 천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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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산 위로 신도들이 걸었던 길 끝에서 최고의 포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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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스테인드글라스 문을 열면 개방적인 베란다로 나갈 수 있는 특이한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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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경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살았던 신자들. 가족 모두가 성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메이지(明治)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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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고토(五島) 열도(列島)의 히사카(久賀) 섬의 고린(五輪)지역에 세워진 구(旧)고린(五輪)성당은 원래 같은 섬의 하마와키(浜脇)지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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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30년째 폐허가 된 예배당. 거기는 신자들의 기도하는 장소는 사라졌지만 건물이 말해 주는 메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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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성 요셉의 과묵함과 성실함은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는 고토(五島)신자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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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향수(郷愁)를 불러 일으키는 배움의 집과 같은 구(旧)고린(五輪)성당에는 일본인 특유의 정교하고 섬세한 감성이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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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건축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애정을 알아볼 수 있는 에가미천주당(江上天主堂). 앞으로 100년, 더 200년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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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테츠카와 요스케(鉄川与助)의 정열을 곳곳에 볼 수 있는 성당 건축. 제대도 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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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조상들이 염원했던 성당 건립. 그리고 신자들이 스스로 수복하면서 유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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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신앙은 항상 마음 속에 있다. 어민들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 고기 잡이로 나간다. 성모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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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소토메(外海)지방에서 바다를 건너 많은 키리시탄들이 오쿠우라(奥浦)지구로 왔다. 고토(五島)에서 키리시탄의 부활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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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곶에 적벽돌로 만든 본격적인 성당이 건설되었다. 미시 시간은 소라를 불어 알렸다. 바닷가에 성당이 서 있는 풍경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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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본인 스스로 귀한 희생이 될 것을 받아들인 기리시탄들이 있었다. 지금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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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막부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하라 성(原城).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하라 성(原城) 토마토는 황무지가 된 땅에서 부활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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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시마바라(島原) 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후, 아리마(有馬) 지역에는 집단 이주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착했다. 지금 종교나 근원을 넘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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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무인도의 고지대에 세운 성당. 데츠카와 요스케(鉄川与助)가 처음으로 작업했다고 하는 벽돌 건물 성당은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아름다운 장식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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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고생하여 노자키(野崎) 섬에 벽돌 성당을 세웠던 신자들이지만 이후 섬은 과소화가 진행된다. 1971년 섬밖으로 집단 이주가 이루어져 노쿠비(野首)성당도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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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오지카(小値賀) 섬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다구치 도미사부로(田口富三郎)씨의 선조는 후나모리(舟森)에 처음으로 이주한 가족을 도와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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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누쿠비(野首)와 후나모리(舟森)의 두 기리시탄 마을을 잇는 약 2.8킬로미터의 험한 시골길은 100년에 걸쳐 신자들이 밟아 다진 기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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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후나모리(舟森) 마을 사람들은 노쿠비(野首) 마을 사람들보다 5년 더 빠른 1966년에 섬 밖으로 집단이주를 시작했다. 오지카(小値賀) 섬에 사는 유일한 호나모리(舟森) 출신자인 신자분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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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오지카(小値賀) 제도(諸島)의 문화적 경관」은 국립 선정 중요 문화적 경관이다.
「옛날 그대로」의 경관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따뜻함과 인정속에 녹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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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에도 시대(1603-1868) 노자키(野崎)섬에 많은 기리시탄들이 희망을 품고 이주해 왔다. 지금은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오지카(小値賀)로 이주하여 섬의 활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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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채석업을 생업으로 해 왔던 돌문화를 지닌 사키우라(崎浦)지역. 가시라가시마(頭ヶ島)성당을 만든 양질의 돌은 돌 다타미(畳:돗자리)와 돌담등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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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오랜 세월을 걸쳐 고장의 돌을 잘라내어 석공과 함께 신자들이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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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외관과 내관 예배당의 차이에 압도당하는 가시라가시마(頭ヶ島) 성당. 그곳은 많은 꽃들로 둘러쌓인 기도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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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사랑을 담아 재배하는 꽃들을 하느님께 보여드리는 행복. 가시라가시마(頭ヶ島)성당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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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다이노우라(鯛ノ浦)의 기리시탄들에게 이주를 유도하고 가시라가시마(頭ヶ島) 취락을 만든 마에다 기다유(前田儀太夫)라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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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가시라가시마(頭ヶ島) 부근의 고토석(五島石)을 사용하였고, 벽돌과 목재는 바다를 건너 운반하여 만든 비원의 아오사가우라(青砂ヶ浦)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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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불교 신자에서 기독교 신자로. 사랑을 관철하여 함께 기도를 드리는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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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산쪽의 바위를 깎고 반대쪽을 성토(盛土)해서 토지를 확보. 항구를 내려다 보는 장소에 위치한 아름다운 벽돌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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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성당의 종은 오늘도 시각을 알리며 기도의 시간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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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많은 성당 건축을 착수한 데쓰카와 요스케(鉄川与助)는 많은 문제를 극복하며 새로운 성당 만들기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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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2014년 여름에 헌당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소(大曾) 성당. 각별한 마음으로 되돌아 보는 성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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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하루프 신부님의 절실한 바람에 의해 실현된 새로운 사키쓰 성당(﨑津教会堂)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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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잠복」에서「부활」까지、사키쓰(崎津) 취락에 신앙의 역사를 들려주는 귀중한 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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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이국적 풍경을 조망하면서 사키쓰(﨑津) 취락을 천천히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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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성당는 신도들의 마음을 지탱하여 주고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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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연말행사「사와기(幸木)」는 아마쿠사에서 행해져 온 정월 장식. 이마도미(今富) 사와기(幸木)는 잠복 기리시탄들의 신앙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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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이마도미(今富) 냇가의 물냉이는 깨소금을 넣고 무친 나물도 텐푸라(튀김)도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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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우연히 발견한 작은 사당에서 인자한 석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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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파묻혀 버린 이마도미(今富)의 역사를 앞으로도 계속 조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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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信徒として洗礼を受けていた平戸の当主が、
領土の信徒を徹底的に弾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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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貿易と布教がセットに。
それがキリスト教信徒が増えた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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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変わっていった信仰ではなく、
布教当時のあり方をそのまま継承したのが本当の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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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信頼していたのにだまされた…。
潜伏時代に起こった悲しい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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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多くの儀式、多くの習わし。
家族の協力なくしては続けられない信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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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今もなお大切に残る根獅子のかくれキリシタンスポットをガイドが解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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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江戸時代、壱岐から移住した小田家は鯨組を組織し、大いに栄えた。
その屋敷は現在資料館と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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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トードス・オス・サントス教会は、長崎で初めて建った教会である。
当時使われた井戸には、今も水が湧き出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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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キリシタンを祀る神社は日本でも珍しい。
枯松神社では年に一度、キリスト教と仏教、かくれキリシタンが、共に祈りを捧げ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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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伊王島にある馬込教会の中央祭壇上には、三大天使の一人、聖ミカエルの像が掲げ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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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浦上のキリシタンたちは、絵踏みを行った罪を償うために、あえて庄屋屋敷跡に教会を建て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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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受難に耐えた浦上信徒の歴史を物語る場所に再建された新聖堂は、ローマ教皇の来日を前に今の姿に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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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煉瓦造りのりっぱな青砂ヶ浦天主堂
その建設に伴った信徒たちの苦労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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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歌手の五輪真弓さんのルーツは久賀島五輪地区
おじいさんは教会でオルガンを弾い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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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シスターが鳴らす黒島天主堂の鐘
透き通ったその音色の秘密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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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キリシタンの姫が嫁いだ先は
キリスト教嫌いの松浦家。そのとき夫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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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昭和初期の堂崎天主堂の公式初聖体式が
報道写真家によって写真におさめられ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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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現在の煉瓦造りの大曾教会堂は二代目
初代の教会堂も生き続け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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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キリシタンの復活期をたどる古い御水帳。大曾教会の一番古い御水帳は、外海で見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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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草の今富集落では明治になってからもカトリックに復帰せず、先祖から伝わる儀式を行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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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大浦天主堂の建設に関わった伊王島の大工・大渡伊勢吉は、伊王島のキリシタンのために2つの教会を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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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外海の潜伏キリシタンが大切にしたというバスチャンの日繰り。一体、何が書かれてい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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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信徒発見や放虎原殉教記念碑など、数々の大作を残す中田秀和氏は五島生まれのカトリッ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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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禁教期、3つの組に分かれて信仰を守り通した﨑津集落。その時代の資料は﨑津資料館「みなと屋」で見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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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ド・ロさま畑で採れた野菜やお茶を味わえる「ヴォスロール」。ド・ロさま小麦で作るパンも美味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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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春日集落のかくれキリシタン講で継承されていた「お札」の行事。当たり札は「おふくろ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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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計画から4年の歳月を費やして建設された田平天主堂
資材を信徒が担いで登った道は、とても険し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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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禁教制度が解除され、宣教活動が本格化すると、海に面した地域の宣教師は小さな船で教会を巡回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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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2018年、創建から100周年を迎えた田平天主堂。それを機に、創建当時のステンドグラスを案内所に展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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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田平天主堂の敷地内にある貝殻の焼き場跡
しかし、よく見ると貝を焼いた跡が無いことに気づ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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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教会堂の多くが、自動機械によって鐘の音を鳴らす中、田平天主堂は今も信徒による人力で鳴ら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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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田平にできるだけ大きな教会堂を建てたかった中田神父と鉄川与助は、切り出した木材の長さに納得し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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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﨑津集落の風景や文化を語るとき、必ず登場する「カケ」と「トウヤ」って、何の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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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중앙·세이히
日本初のキリシタン大名として知られる大村純忠。戦に明け暮れる中で、キリスト教に心動かされてい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