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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아리타야키 도자기 타일, 구로시마(黒島)산 화강암. 구로시마(黒島) 성당 건축에 사용된 소재로 주목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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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마르먼드 신부가 혼신을 다하여 건축한 구로시마(黒島) 성당. 그러나 거액의 공사비로 건축은 일시 중단될 위기에 놓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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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이 땅에서 나는 돌을 쌓아 올려 만든 드로 담은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130년이나 되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무너지지 않아 그 튼튼함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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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소토메(外海)에는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에도 교회로 복귀하지 않고 잠복시대 이래 지켜 온 신앙을 계속해서 지키는 카쿠레 키리시탄 조직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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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소토메(外海)에 부임해 온 드로 신부는 마을 사람들이 매우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고향 집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소토메(外海)를 위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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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드로 신부는 물건을 만드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원료로 사용하는 밀과 같은 것들도 스스로 재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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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구 시츠구조원(出津救助院) 2층에 있는 오래된 오르간은 드로 신부가 프랑스에서 들여온 것. 현재 수녀님이 견학자를 위해 연주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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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오노(大野)성당은 드∙로신부가 세운 시츠(出津)성당의 공소이다. 현재로는 일년에 한번만 기념미사가 집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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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오노(大野)성당은 일반 민가 형태로 되어 있지만 드∙로담, 벽돌을 쌓음으로써 만든 창문, 현관 앞 바람막이 등 건축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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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가난 때문에 키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소중하게 돌보았던 고토(五島)의 여성들. 그 정신이 지금도 계승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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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전국시대(戦国時代:1493-1590)、영주들은 앞다투어 포르투칼 무역을 유치하려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가 영내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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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히노에() 성터에서 출토한 동남 아시아와 중국등의 도자기 종류. 이것들은 아리마 씨(有馬氏)가 무역으로 번성했던 것을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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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유명한 기독교 정신은 아리마(有馬) 지역에도 뿌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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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일본을 하나로 통솔하는 위정자들에게 아리마 씨(有馬氏)는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가. 금박 기와(金箔瓦)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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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교양을 두루 갖춘 일본의 소년 4명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문화 교류는 소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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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예수회는 포교를 담당할 청년들 양성에 힘을 쏟았다. 미술, 음악, 일본어와 라틴어 까지 소년들은 차례대로 이를 배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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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서로「공존」을 바랄 때, 넘어야 되는 벽이 있다. 신앙의 진리는 그것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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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오다(織田)、도요토미(豊臣) 시대에 유행한 초기 석축기술을 하라 성터(原城跡)에서 볼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까지는 성곽 건축의 과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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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시마바라(島原) 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에는 많은 기리시탄들이 싸웠고 남녀노소2만 6천명의 목숨을 잃었다. 하라 성(原城)은 바로 그 무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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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조상 대대로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를 통치해 온 아리마(有馬) 씨가 이 지역을 떠났다. 새롭게 맞이한 영주는 일본의 운명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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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하라 성터(原城跡)에서 출토된 물건중에는 기독교 관련 물건이 많다. 죽기 전에 신자 봉기군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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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죽은 자의 부활을 두려워 하여 철저히 파괴한 하라 성(原城). 그러나 한편으로 종교를 뛰어넘어서 죽음을 애도한 사람들의 모습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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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본인 스스로 귀한 희생이 될 것을 받아들인 기리시탄들이 있었다. 지금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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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막부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하라 성(原城).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하라 성(原城) 토마토는 황무지가 된 땅에서 부활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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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시마바라(島原) 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후, 아리마(有馬) 지역에는 집단 이주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착했다. 지금 종교나 근원을 넘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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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미나미 시마바라(南島原)시에 있는 반원 기둥 형태의 기리시탄 묘비. 비문(碑文)이 로마자로 새겨져 서기와 원호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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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미나미 시마바라시(南島原市)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리시탄 묘비가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 정신을 이 매장방법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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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잠복」에서「부활」까지、사키쓰(崎津) 취락에 신앙의 역사를 들려주는 귀중한 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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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아이들이 살기 위해서 밭을 일구고 기도를 드린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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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이마도미(今富) 냇가의 물냉이는 깨소금을 넣고 무친 나물도 텐푸라(튀김)도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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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大江教会の装飾品には作った人のぬくもりが感じられる。祭壇に飾られた聖画もそのひとつ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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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草の信徒のためにすべてを捧げたガルニエ神父は、天草弁で気さくに話しかける人間味あふれる神父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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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五足の靴」の旅の目的は、キリシタンゆかりの地・天草で親しまれているガルニエ神父をたずねること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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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草四郎が率いた一揆軍の象徴ともいえる陣中旗。
血痕や刀、槍の跡に戦いの歴史が垣間見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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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禁教期に外海地方で伝道した金鍔次兵衛神父は、あるときは武士に変装し、金鍔の刀を差し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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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椿が長崎や五島のキリシタンゆかりの木として大切にされる所以は、バスチャンの伝説に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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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教会や救助院をつくったド・ロ神父は、農業にも力を注ぎ、女性たちに土づくりから指導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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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五島市奥浦地区は、貧しい子を救済した子部屋と、
その事業母体となった女部屋発祥の地でも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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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列福運動も起こっている五島出身の中村長八神父
ブラジルでは「生ける聖人」と呼ばれた移民者の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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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黒島は天国のほうが人口密度が高い!?
十字架が密集するカトリック共同墓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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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外海の潜伏キリシタンが、神様に見立てて拝んだ像は「イナッショ様」というユニークな名前で呼ば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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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一時は耕作放棄地となっていた「ド・ロさま畑」。今は息を吹き返し、賑やかな交流の場と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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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正遣欧少年使節としてローマに渡り、大歓迎を受けて帰ってきた4人を待ち受けていたのは辛い現実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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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正遣欧少年使節に随行したメンバーの中にドラードという15歳の混血児がいた。彼の使命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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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正遣欧少年使節の4人のうち、ただ1人棄教した千々石ミゲルの墓が発見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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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数奇な運命をたどったジュリアンの最期は、拷問の中でも最も苦しいとされる穴吊りの刑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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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17世紀に日本人絵師によって描かれた聖画「雪のサンタマリア」。映画「沈黙〜サイレンス〜」にも登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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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外海の潜伏キリシタンが大切にしたというバスチャンの日繰り。一体、何が書かれてい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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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明治初期、カトリックに復帰したばかりの信徒のために暦を印刷したのは、のちに外海に赴任したド・ロ神父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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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グーテンベルク印刷機を使って印刷された「天草本(ルビ:あまくさぼん)」。ローマ字書きの「伊曽保物語(イソップ物語)」なども出版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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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중앙·세이히
日本初のキリシタン大名として知られる大村純忠。戦に明け暮れる中で、キリスト教に心動かされてい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