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티쟝신부는 오우라천주당에서 영원히 잠들고 있다. 고대와 중세 유럽에서는 성당은 기도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묘소이었고 유해가 지하나 지하 예배당에 매장되었었다. 유럽의 교회에서는 벽에 묘비가 끼워 있다.

프티쟝신부는 지병을 무릅쓰고 정력적으로 선교와 성당 건립을 위한 자금 마련에 힘을 쏟고 있었는데, 1884년10월7일에 병 시중을 드는 신부들에게 작별을 고하자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일본천주교를 부활시키기 위해 평생을 바쳐 일본인 신부나 신학생을 지도∙육성하고 일본에 선교의 씨앗을 뿌린 프티쟝신부. 그 유해는 중앙제대 앞 마루 밑에 안치되어 있다. 거기는 바로 [신도 발견]때 프티쟝신부가 일본인 신자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