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지방 신문에 노쿠비(野首) 성당 폐쇄 기사가 실린다. 노쿠비(野首)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미사를 드린 것은 1971년 3월 28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성당 종이 울리자 정장 차림을 한 신자들이 차례로 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위로는 60대에서 아래로는 갓난아이까지 여섯 가족의 31명이었다. 한참 일할 나이의 20-30대는 없었다. 이것이 섬의 과소화의 현실이었다. 미사가 시작되자 눈물을 글썽이는 신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름은 모두 시라하마(白浜) 성씨. 노쿠비(野首)에 처음으로 이주한 마츠타로(松太郎)의 일가족이 금교령이 해제된 후 동해안의 아름다운 백사장을 참고로 「白浜:시라하마」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일가족은 분가를 거듭하여 노쿠비(野首)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성당의 중요한 것은 오지카(小値賀)섬의 가톨릭 유치원에서 보관하기로 하고 미사가 끝난 뒤 마리아 상과 예수 상을 신자 모두가 선착장까지 운반했다. 묘지는 풀이 무성해 지는 것을 염려하여 시멘트를 발랐다. 선조가 잠든 고향을 떠나는 것을 누구보다도 슬퍼했을 것이다. 두 가족의 이주에서 시작된 160년된 신앙의 역사는 눈물의 미사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