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카(久賀) 섬에서「고토(五島) 구즈레(崩れ)붕괴」는 시작되었다. 「구즈레(崩れ):붕괴」는 잠복 시대에 신앙을 지켜내려 온 신자들이 대규모로 적발된 것을 말한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1868-1912)을 맞이하여 외교를 했음에도 금교령이 풀리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우라(大浦) 성당에서 「신자발견」을 계기로 고토(五島)에서도 기리시탄들이 연이어 신앙을 표명했다. 메이지 정부는 신자들을 없애기 위해 탄압을 시작했다. 히사카(久賀) 섬의 로야의 사코(牢屋の窄)에서는 조용한 항만에 인접한 겨우6평 남짓의 감옥에 약 200명의 기리시탄들이 수용되었다. 이 비극이 프치장 신부에 의해 유럽에 알려지자 일본은 각국에서 비난을 받았고 곧 메이지 정부는 기독교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 박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3명으로 그 이름이 묘비에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은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이었다. 모두 순순하게 가르침을 따라 저항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