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상태였던 가시라가시마(頭ヶ島)을 1858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척한 인물이다. 고토(五島) 히사카시마(久賀島) 출신의 마에다 기다유(前田儀太夫)이다. 그는 어렸을 때 기조(儀助)라고 불리웠고 당시 성행했던 고래잡이 관계로 형 조주로 (長十郎)와 함께 가미고토(上五島) 아리카와(有川)로 들어가 무인도였던 가시라가시마(頭ヶ島)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좀처럼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자 소토메(外海)에서 이주해 온 다이노우라(鯛ノ浦) 기리시탄들을 권유한다. 이것이 가시라가시마(頭ヶ島) 가톨릭 취락 형성의 계기가 된다. 게다가 당시 마에다 기다유(前田儀太夫)는 불교 신자였지만 손자대에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가시라가시마(頭ヶ島) 부근의 후쿠우라(福浦)라는 지역에 그의 묘비가 남겨져 있다. 고토석(五島石)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묘석에는 측면과 뒷면의 3면에 걸쳐 「가시라가시마(頭ヶ島) 유래기」라는 제목으로 한문조의 문장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귀중한 역사 자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