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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멀리 해상에서 볼 수 있는 산은 항로를 통해서 전래된 다양한 종교들의 거점이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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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16세기 취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귀중한 지역. 전국시대 이후 변하지 않는 환경과 삶, 그리고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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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계단식 논 한가운데에 있는 약간 높은 산은 키리시탄 신앙이 지켜져 온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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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키리시탄 순교지이자 성지이기도 한 무인도. 신자들은 성수를 채취하기 위하여 거센 파도를 무릅쓰고 섬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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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오우라천주당은 일본26성인을 위해 건립된 성당이다. 그리고 성당 그 자체가 잠복 키리시탄을 위해 보내진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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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1597년에 선교사 등 26명이 나가사키(長崎)의 니시자카(西坂) 언덕에서 책형으로 처형되었다. 10대 소년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가장 어린 이는 1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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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일본26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은 세계 각지에 있다. 일본의 역사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던 사실을 세계에서는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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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시성된 지 100년째가 되는 1962년에 순교 언덕은 26성인의 삶을 배우는 순례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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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과소화가 진행되는 나루섬(奈留島). 기도의 등불을 지키고 있는 신자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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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소토메(外海)지방에서 바다를 건너 많은 키리시탄들이 오쿠우라(奥浦)지구로 왔다. 고토(五島)에서 키리시탄의 부활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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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전국시대(戦国時代:1493-1590)、영주들은 앞다투어 포르투칼 무역을 유치하려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가 영내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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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히노에() 성터에서 출토한 동남 아시아와 중국등의 도자기 종류. 이것들은 아리마 씨(有馬氏)가 무역으로 번성했던 것을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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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유명한 기독교 정신은 아리마(有馬) 지역에도 뿌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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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일본을 하나로 통솔하는 위정자들에게 아리마 씨(有馬氏)는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가. 금박 기와(金箔瓦)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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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교양을 두루 갖춘 일본의 소년 4명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문화 교류는 소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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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예수회는 포교를 담당할 청년들 양성에 힘을 쏟았다. 미술, 음악, 일본어와 라틴어 까지 소년들은 차례대로 이를 배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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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서로「공존」을 바랄 때, 넘어야 되는 벽이 있다. 신앙의 진리는 그것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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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오다(織田)、도요토미(豊臣) 시대에 유행한 초기 석축기술을 하라 성터(原城跡)에서 볼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까지는 성곽 건축의 과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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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시마바라(島原) 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에는 많은 기리시탄들이 싸웠고 남녀노소2만 6천명의 목숨을 잃었다. 하라 성(原城)은 바로 그 무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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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조상 대대로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를 통치해 온 아리마(有馬) 씨가 이 지역을 떠났다. 새롭게 맞이한 영주는 일본의 운명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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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하라 성터(原城跡)에서 출토된 물건중에는 기독교 관련 물건이 많다. 죽기 전에 신자 봉기군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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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죽은 자의 부활을 두려워 하여 철저히 파괴한 하라 성(原城). 그러나 한편으로 종교를 뛰어넘어서 죽음을 애도한 사람들의 모습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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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막부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하라 성(原城).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하라 성(原城) 토마토는 황무지가 된 땅에서 부활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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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시마바라(島原) 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후, 아리마(有馬) 지역에는 집단 이주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착했다. 지금 종교나 근원을 넘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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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미나미 시마바라(南島原)시에 있는 반원 기둥 형태의 기리시탄 묘비. 비문(碑文)이 로마자로 새겨져 서기와 원호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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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미나미 시마바라시(南島原市)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리시탄 묘비가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 정신을 이 매장방법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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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잠복」에서「부활」까지、사키쓰(崎津) 취락에 신앙의 역사를 들려주는 귀중한 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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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연말행사「사와기(幸木)」는 아마쿠사에서 행해져 온 정월 장식. 이마도미(今富) 사와기(幸木)는 잠복 기리시탄들의 신앙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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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우연히 발견한 작은 사당에서 인자한 석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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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파묻혀 버린 이마도미(今富)의 역사를 앞으로도 계속 조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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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信徒として洗礼を受けていた平戸の当主が、
領土の信徒を徹底的に弾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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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貿易と布教がセットに。
それがキリスト教信徒が増えた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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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変わっていった信仰ではなく、
布教当時のあり方をそのまま継承したのが本当の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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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信頼していたのにだまされた…。
潜伏時代に起こった悲しい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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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多くの儀式、多くの習わし。
家族の協力なくしては続けられない信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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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今もなお大切に残る根獅子のかくれキリシタンスポットをガイドが解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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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江戸時代、壱岐から移住した小田家は鯨組を組織し、大いに栄えた。
その屋敷は現在資料館と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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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草四郎が率いた一揆軍の象徴ともいえる陣中旗。
血痕や刀、槍の跡に戦いの歴史が垣間見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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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キリシタンを祀る神社は日本でも珍しい。
枯松神社では年に一度、キリスト教と仏教、かくれキリシタンが、共に祈りを捧げ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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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シスターが鳴らす黒島天主堂の鐘
透き通ったその音色の秘密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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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キリシタンの姫が嫁いだ先は
キリスト教嫌いの松浦家。そのとき夫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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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昭和初期の堂崎天主堂の公式初聖体式が
報道写真家によって写真におさめられ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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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열도
キリシタンの復活期をたどる古い御水帳。大曾教会の一番古い御水帳は、外海で見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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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正遣欧少年使節としてローマに渡り、大歓迎を受けて帰ってきた4人を待ち受けていたのは辛い現実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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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草の今富集落では明治になってからもカトリックに復帰せず、先祖から伝わる儀式を行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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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天正遣欧少年使節の4人のうち、ただ1人棄教した千々石ミゲルの墓が発見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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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外海の潜伏キリシタンが大切にしたというバスチャンの日繰り。一体、何が書かれてい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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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禁教期、3つの組に分かれて信仰を守り通した﨑津集落。その時代の資料は﨑津資料館「みなと屋」で見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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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16世紀末に有馬セミナリヨの画学生によって描かれたとされる銅版画「セビリアの聖母」復刻までのドラ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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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쪽
春日集落のかくれキリシタン講で継承されていた「お札」の行事。当たり札は「おふくろ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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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아마쿠사
﨑津集落の風景や文化を語るとき、必ず登場する「カケ」と「トウヤ」って、何の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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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중앙·세이히
日本初のキリシタン大名として知られる大村純忠。戦に明け暮れる中で、キリスト教に心動かされてい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