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 몇 년 전부터 시마바라(島原)와 아마쿠사(天草)에서는 기후 변화로 흉작을 비롯하여 지진등의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당시 영주였던 마츠쿠라(松倉)씨의 조세 징수는 가혹했으며 기리시탄 탄압도 삼엄해졌다.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였으니 기리시탄이 되면 구원을 얻으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문서가 나돌았다.
신자들의 폭동이 일어난 원인중에 한 가지는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 을 섬기며 농민이 되었던 원래 신하들이 선도했다는 설이 있다. 이 주모자들은 시마바라(島原)반도 주민들을 끌어들이고 시바바라 성(島原城)을 공격하는 동시에 아마쿠사(天草)에서는 도미오카 성(富岡城)을 공격했다. 시마바라(島原)와 아마쿠사(天草)의 민중은 세력을 더하여 약 2만 6천명이 하라 성(原城)에 집결하여 농성을 벌였다.
약 12만명이라는 막부군에 포위당한 약 3개월간, 막부는 농성하는 민중들에게 항복을 요구했다. 목숨을 건 싸움은 막부의 총공격으로 하룻밤에 종결되었고 농성을 벌인 민중들은 처형되었다. 이때는 마침 산에서는 벚꽃이 필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