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츠(出津)지구의 키리시탄은 프티쟝 신부가 찾아오자 가톨릭 교회로 복귀하기 시작하였다. 1876년에 페뤼 신부가 임시 성당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1879년에 소토메 지구 사제로서 부임해 온 이가 마르크 마리이 드로 신부이다. 프랑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28세 때 일본에 왔다. 요코하마(橫浜)나 나가사키(長崎)의 오우라천주당(大浦天主堂) 등지에서 석판 인쇄나 라텐(羅典)신학교의 건설 등 많은 성과를 남겼다. 소토메(外海) 부임은 일본에 온지 11년째 때의 일이며 그 때 나이는 39세였다.

드로 신부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소토메(外海) 사람들을 구제하고 싶다는 사명감을 크게 품고 있었다고 한다. 신앙의 거점으로서 시츠(出津)성당과 오노(大野)성당을 건설하였고 또 자활, 복지시설을 설립하여 개간지에서 농업을 가르쳤다. 그리고 항구를 정비하여 어민을 돕고, 마을의 도로 정비도 뒤에서 지원하였다. 진료소 운영이나 전염병 치료 등 의료구호사업을 통해서 많은 목숨을 구하는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서 소토메(外海)를 위해 온 힘을 다하였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은 드로 신부가 자신의 개인 재산을 들인 사랑의 실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