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의 [신도 발견]이후 신부(성직자)가 없는 가운데 신자들이 어떻게 영세를 받았던 것일까? 프티쟝신부는 수상하게 여겼는데, 잠복 키리시탄들한테서 그들이 대대로 라틴어나 포르투갈어로 된 기도문을 그대로 전해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잠복 키리시탄측도 조상으로부터 이어 온 기도문들이 옳은 것인지 신부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소토메(外海)나 우라카미(浦上), 고토(五島) 등지에 사는 잠복 키리시탄 사이에서는 7대 후에 바다를 건너 고백성사를 주는 사제가 올 거라는 ‘바스챤의 예언’이 널리 퍼져 이었다. 그 사제는 로마교황이 파견하고 독신이며 성모를 경애한다는 것이다. 프티쟝신부가 바로 그 인물임을 알게 된 각 지방에 사는 잠복 키리시탄들은 오우라천주당을 찾아갔다. 어떤 이는 신부에게 십자가나 메다이를 청하기도 하였다. 천주당 안에는 관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복 키리시탄들은 서슴지 않고 신앙을 고백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쿠즈레’(붕괴라는 뜻)라 불리는 탄압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