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년, 일본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포르투칼 함선이 가고시마(鹿児島) 다네가시마(種子島)에 들어와서 소총을 전한다. 실권을 잡은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足利尊氏(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교토(京都)에서 창시한 무실정권(1336-1573))는 약화되었고, 각 지방의 영주가 앞다투어 대두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영주들은 남반선(포루투칼 함선)과의 무역을 영내에 유치하여 무기와 재력을 얻으려고 했다. 시마바라(島原) 반도 일대에 세력을 가진 아리마가(有馬家) 영주인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포르투칼과의 무역에는 조건이 있었다. 영민들이 기독교 포교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는 예수회의 선교사들이 영내에서 기독교 포교를 인정하고 아리마 하루노부가 자청하여 세례를 받으며 ‘돈 프로타지오’라고 세례명으로 불리우게 된다. 선교사 프로이스가 기록한 역사서인 [일본사]에 의하면 아리마 씨(有馬氏)는 예수회의 후원으로 가까운 사가(佐賀)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류조지 다카노부(龍造寺隆信)의 습격을 피할 수 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