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찾기(지역별)
禁教令が撤廃され、信仰の自由を得た信徒たちはそれぞれの集落に教会堂を建設した。資金は、信徒たちが生活費を切り詰めたり、外国人宣教師たちが私財を投じたりすることで工面され、多くの信徒が建設や運搬作業に携わった。
田平にできるだけ大きな教会堂を建てたかった中田神父と鉄川与助は、切り出した木材の長さに納得しなかった
教会堂の多くが、自動機械によって鐘の音を鳴らす中、田平天主堂は今も信徒による人力で鳴らしている
田平天主堂の敷地内にある貝殻の焼き場跡
しかし、よく見ると貝を焼いた跡が無いことに気づく
2018年、創建から100周年を迎えた田平天主堂。それを機に、創建当時のステンドグラスを案内所に展示。
計画から4年の歳月を費やして建設された田平天主堂
資材を信徒が担いで登った道は、とても険しかった
信徒発見や放虎原殉教記念碑など、数々の大作を残す中田秀和氏は五島生まれのカトリック
大浦天主堂の建設に関わった伊王島の大工・大渡伊勢吉は、伊王島のキリシタンのために2つの教会を造った
現在の煉瓦造りの大曾教会堂は二代目
初代の教会堂も生き続けている
煉瓦造りのりっぱな青砂ヶ浦天主堂
その建設に伴った信徒たちの苦労とは!?
受難に耐えた浦上信徒の歴史を物語る場所に再建された新聖堂は、ローマ教皇の来日を前に今の姿になった。
浦上のキリシタンたちは、絵踏みを行った罪を償うために、あえて庄屋屋敷跡に教会を建てた。
伊王島にある馬込教会の中央祭壇上には、三大天使の一人、聖ミカエルの像が掲げられている。
トードス・オス・サントス教会は、長崎で初めて建った教会である。
当時使われた井戸には、今も水が湧き出ている。
성당는 신도들의 마음을 지탱하여 주고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장소.
이국적 풍경을 조망하면서 사키쓰(﨑津) 취락을 천천히 걸어본다.
하루프 신부님의 절실한 바람에 의해 실현된 새로운 사키쓰 성당(﨑津教会堂) 건축.
2014년 여름에 헌당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소(大曾) 성당. 각별한 마음으로 되돌아 보는 성당의 역사.
많은 성당 건축을 착수한 데쓰카와 요스케(鉄川与助)는 많은 문제를 극복하며 새로운 성당 만들기에 도전했다.
성당의 종은 오늘도 시각을 알리며 기도의 시간을 알린다.
산쪽의 바위를 깎고 반대쪽을 성토(盛土)해서 토지를 확보. 항구를 내려다 보는 장소에 위치한 아름다운 벽돌 구조이다.
가시라가시마(頭ヶ島) 부근의 고토석(五島石)을 사용하였고, 벽돌과 목재는 바다를 건너 운반하여 만든 비원의 아오사가우라(青砂ヶ浦) 성당.
외관과 내관 예배당의 차이에 압도당하는 가시라가시마(頭ヶ島) 성당. 그곳은 많은 꽃들로 둘러쌓인 기도의 장소.
오랜 세월을 걸쳐 고장의 돌을 잘라내어 석공과 함께 신자들이 쌓아 올렸다.
채석업을 생업으로 해 왔던 돌문화를 지닌 사키우라(崎浦)지역. 가시라가시마(頭ヶ島)성당을 만든 양질의 돌은 돌 다타미(畳:돗자리)와 돌담등에 사용되었다.
고생하여 노자키(野崎) 섬에 벽돌 성당을 세웠던 신자들이지만 이후 섬은 과소화가 진행된다. 1971년 섬밖으로 집단 이주가 이루어져 노쿠비(野首)성당도 폐쇄되었다.
무인도의 고지대에 세운 성당. 데츠카와 요스케(鉄川与助)가 처음으로 작업했다고 하는 벽돌 건물 성당은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아름다운 장식이 새겨져 있다.
곶에 적벽돌로 만든 본격적인 성당이 건설되었다. 미시 시간은 소라를 불어 알렸다. 바닷가에 성당이 서 있는 풍경을 볼 수가 있다.
조상들이 염원했던 성당 건립. 그리고 신자들이 스스로 수복하면서 유지해 왔다.
테츠카와 요스케(鉄川与助)의 정열을 곳곳에 볼 수 있는 성당 건축. 제대도 그 중의 하나다.
건축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애정을 알아볼 수 있는 에가미천주당(江上天主堂). 앞으로 100년, 더 200년 남아 있기를.
과소화가 진행되는 나루섬(奈留島). 기도의 등불을 지키고 있는 신자들을 만났다.
향수(郷愁)를 불러 일으키는 배움의 집과 같은 구(旧)고린(五輪)성당에는 일본인 특유의 정교하고 섬세한 감성이 살아 숨쉬고 있다.
성 요셉의 과묵함과 성실함은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는 고토(五島)신자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30년째 폐허가 된 예배당. 거기는 신자들의 기도하는 장소는 사라졌지만 건물이 말해 주는 메시지가 있다.
고토(五島) 열도(列島)의 히사카(久賀) 섬의 고린(五輪)지역에 세워진 구(旧)고린(五輪)성당은 원래 같은 섬의 하마와키(浜脇)지역에 있었다.
경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살았던 신자들. 가족 모두가 성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메이지(明治)시대.
스테인드글라스 문을 열면 개방적인 베란다로 나갈 수 있는 특이한 설계.
산 위로 신도들이 걸었던 길 끝에서 최고의 포상을 받는다.
타비라(田平)천주당 근처에 있는 키리시탄 묘지.
귀천한 신자들은 거기서 조용히 잠들고 있다.
빨간 벽돌과 빨간 아마카와(석회와 적토를 섞어서 만든 접합제).
신자들은 조개 껍데기를 원료로 만든 접착제를 사용하여 일본의 그리스도교 부활을 상징하는 천주당을 완공하였다.
오노(大野)성당은 일반 민가 형태로 되어 있지만 드∙로담, 벽돌을 쌓음으로써 만든 창문, 현관 앞 바람막이 등 건축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많다.
오노(大野)성당은 드∙로신부가 세운 시츠(出津)성당의 공소이다. 현재로는 일년에 한번만 기념미사가 집행된다.
같은 소토메(外海)지구에 있는 시츠(出津)성당은 전망이 좋은 곳에 세워졌는데, 오노(大野)성당은 그와 대조적으로 후미진 곳에 서 있다.
‘프랑스절’이라 불렸던 오우라천주당. 성당 안에는 프랑스와 연유가 있는 선물이 많이 있다.
일본천주교를 부활시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프티쟝신부는 지금도 오우라천주당에서 잠들어 있다.
일본이 개항되고 나서도 여전히 허용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 신앙. 그러한 가운데 성당 건설이 진행되었다.
나가사키(長崎)에 천주당이 건립된 것을 외국인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본인의 모습이 없었다.
창건 당시에는 삼랑식(三廊式)의 작은 성당. 오우라천주당은 187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오우라천주당을 건립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느라 프티쟝(Bernard Thadée Petitjean)신부는 분주하였다. 그의 편지를 통해서 그 노고를 알 수 있다.
오우라천주당은 일본26성인을 위해 건립된 성당이다. 그리고 성당 그 자체가 잠복 키리시탄을 위해 보내진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소토메(外海)에 부임한 드로 신부는 주민들이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특히 여성들이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기술을 익히게 하였다.
구로시마(黒島) 성당의 특징인 아름다운 나뭇결 리브 볼트 천장. 실은 그 나뭇결은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고 전해진다.
마르먼드 신부가 혼신을 다하여 건축한 구로시마(黒島) 성당. 그러나 거액의 공사비로 건축은 일시 중단될 위기에 놓였었다.
구로시마(黒島)에서는, 「신앙심이 깊다」를 「신코카(신앙가)」라고 한다. 신자 모두가 성모 마리아상의 그림과 로자리오, 십자가등을 매일 지니고 다닌다.
아리타야키 도자기 타일, 구로시마(黒島)산 화강암. 구로시마(黒島) 성당 건축에 사용된 소재로 주목 받음.
2년의 세월을 걸쳐 완성한 대규모의 구로시마(黒島) 성당. 헌당에 관여한 목수 중에 고토(五島)출신에 배를 만드는 목수 청년이 있었다.
구로시마(黒島)에서 처음으로 미사가 드려졌을 때의 당시 시대 상황은 기독교가 금교령 정책으로 억압을 받았을 때였다. 신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변장을 하고 구로시마(黒島)를 건넜다.
구로시마(黒島)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아름다운 성당이다. 마르먼드 신부는 프랑스에서 수많은 물품을 주문했다.
일본에서는 극히 드문 설교단이다. 구로시마(黒島) 성당에 남겨진 설교단에는 마르먼드 신부님이 손수 판 장식이 남겨져 있다.
구로시마(黒島) 성당 건설을 위해 사용된 벽돌은 40만개라고 한다. 일부는 신자들이 섬에서 구워 온 벽돌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