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찾기(지역별)
先祖から受け継いだ祈りの儀式を守り続ける人々、ミサの記憶やクリスマスの思い出を楽しそうに語る信徒たち、キリシタンのまちの歴史を発信するボランティア。祈りのふるさとには多くの物語が息づいている。
禁教制度が解除され、宣教活動が本格化すると、海に面した地域の宣教師は小さな船で教会を巡回した
ド・ロさま畑で採れた野菜やお茶を味わえる「ヴォスロール」。ド・ロさま小麦で作るパンも美味しい!
天草の今富集落では明治になってからもカトリックに復帰せず、先祖から伝わる儀式を行った
歌手の五輪真弓さんのルーツは久賀島五輪地区
おじいさんは教会でオルガンを弾いていた
파묻혀 버린 이마도미(今富)의 역사를 앞으로도 계속 조사하고 싶다.
이마도미(今富) 냇가의 물냉이는 깨소금을 넣고 무친 나물도 텐푸라(튀김)도 맛있어요!
성당는 신도들의 마음을 지탱하여 주고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장소.
2014년 여름에 헌당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소(大曾) 성당. 각별한 마음으로 되돌아 보는 성당의 역사.
불교 신자에서 기독교 신자로. 사랑을 관철하여 함께 기도를 드리는 가족이 있다.
다이노우라(鯛ノ浦)의 기리시탄들에게 이주를 유도하고 가시라가시마(頭ヶ島) 취락을 만든 마에다 기다유(前田儀太夫)라는 사람은.
사랑을 담아 재배하는 꽃들을 하느님께 보여드리는 행복. 가시라가시마(頭ヶ島)성당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여기에 있다.
에도 시대(1603-1868) 노자키(野崎)섬에 많은 기리시탄들이 희망을 품고 이주해 왔다. 지금은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오지카(小値賀)로 이주하여 섬의 활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오지카(小値賀) 제도(諸島)의 문화적 경관」은 국립 선정 중요 문화적 경관이다.
「옛날 그대로」의 경관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따뜻함과 인정속에 녹아 들어 있다.
후나모리(舟森) 마을 사람들은 노쿠비(野首) 마을 사람들보다 5년 더 빠른 1966년에 섬 밖으로 집단이주를 시작했다. 오지카(小値賀) 섬에 사는 유일한 호나모리(舟森) 출신자인 신자분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누쿠비(野首)와 후나모리(舟森)의 두 기리시탄 마을을 잇는 약 2.8킬로미터의 험한 시골길은 100년에 걸쳐 신자들이 밟아 다진 기도의 길이다.
오지카(小値賀) 섬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다구치 도미사부로(田口富三郎)씨의 선조는 후나모리(舟森)에 처음으로 이주한 가족을 도와 주었다고 한다.
시마바라(島原) 아마쿠사(天草) 신자들의 봉기후, 아리마(有馬) 지역에는 집단 이주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착했다. 지금 종교나 근원을 넘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막부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하라 성(原城).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하라 성(原城) 토마토는 황무지가 된 땅에서 부활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은 항상 마음 속에 있다. 어민들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 고기 잡이로 나간다. 성모님과 함께.
과소화가 진행되는 나루섬(奈留島). 기도의 등불을 지키고 있는 신자들을 만났다.
성 요셉의 과묵함과 성실함은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는 고토(五島)신자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30년째 폐허가 된 예배당. 거기는 신자들의 기도하는 장소는 사라졌지만 건물이 말해 주는 메시지가 있다.
경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살았던 신자들. 가족 모두가 성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메이지(明治)시대.
주일마다 그리고 성탄절 같은 특별한 축일에도 계속 다니고 있는 천주당.
소토메(外海)에는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에도 교회로 복귀하지 않고 잠복시대 이래 지켜 온 신앙을 계속해서 지키는 카쿠레 키리시탄 조직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소토메(外海) 에는 드로 신부가 스스로 보여준 사랑의 정신을 전하고자 활동하는 이가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도로 사마(드로 님)의 집”이다.
카미다나(神棚; 집안에 신을 모셔 놓은 감실)에 숨겨진 묵주, 할아버지가 외우는 불가사의한 기도…. 카쿠레키리시탄의 오랜 역사를 많은 분들이 알아 주었으면 한다.
구로시마(黒島)에서는, 「신앙심이 깊다」를 「신코카(신앙가)」라고 한다. 신자 모두가 성모 마리아상의 그림과 로자리오, 십자가등을 매일 지니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