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찾기(지역별)
数百年前の風景が残る山深いキリシタン集落、地元でとれる石を積み上げて造った教会堂や石壁、静寂のなかにたたずむ海辺のキリシタン墓碑。潜伏から再布教、カトリック復帰への過程と、信仰の歴史を伝える風景がここにある。
2018年4月にオープンした春日集落の案内拠点施設では、歴史を受け継ぐ「語り部」たちと交流できる
グーテンベルク印刷機を使って印刷された「天草本(ルビ:あまくさぼん)」。ローマ字書きの「伊曽保物語(イソップ物語)」なども出版された
﨑津集落や今富集落を歩いていて気づくのが、玄関に飾られているしめ縄。一年中外さないのはなぜ?
﨑津集落の風景や文化を語るとき、必ず登場する「カケ」と「トウヤ」って、何のこと?
1600年頃に天草の教会で使われていたのは、竹筒を使ったパイプオルガン
とても心地よい音色だったという
今から400年以上も前に横瀬浦で歌われていたラテン語聖歌が、西海市の小学生の歌声で甦った
計画から4年の歳月を費やして建設された田平天主堂
資材を信徒が担いで登った道は、とても険しかった
黒島天主堂の祭壇に敷かれている美しい有田焼のタイル
なんと、五島列島のとある場所でも使用されていた!?
多くの人が見学に訪れる日本二十六聖人殉教記念碑。実は碑の裏側にもこんな作品が!
禁教期、3つの組に分かれて信仰を守り通した﨑津集落。その時代の資料は﨑津資料館「みなと屋」で見ることができる
信徒発見や放虎原殉教記念碑など、数々の大作を残す中田秀和氏は五島生まれのカトリック
仏教の教えにならう三界萬霊塔が、潜伏キリシタンゆかりの集落にも多く立てられているのは何故?
一時は耕作放棄地となっていた「ド・ロさま畑」。今は息を吹き返し、賑やかな交流の場となっている
樹齢250年以上といわれる巨大サザンカは
西彼半島からの移住者が持ち込んだもの
旧五輪教会堂の正面脇につながる九州自然歩道は
かつて信徒たちが利用していた里道
匿名の信者から贈られた大浦天主堂の鐘は
約1m四方のフランス製
昭和初期の堂崎天主堂の公式初聖体式が
報道写真家によって写真におさめられていた
シスターが鳴らす黒島天主堂の鐘
透き通ったその音色の秘密とは・・・
椛島の潜伏キリシタンは誰一人カトリックに復帰せず、
禁教時代の信仰を守り続けた
大きくて堅い豆腐や素朴なまんじゅうは、
カトリック集落に伝わる昔ながらの味
外海赴任から35年、外海のためにすべてを捧げたド・ロ神父は、自らが造成した野道共同墓地に眠っている。
山林に囲まれた大きな岩。それは、年に一度だけ、見張りを立てて、オラショを声に出して唱えた場所だった。
終戦から4ヶ月後のクリスマス、戦後初めての鐘が浦上一帯に鳴り響き、信徒たちを勇気づけた。
旧天主堂に飾られていた高さ2mのマリア像は原爆により破壊され、焼け跡から頭の部分だけが見つかった。
小学校の建替え工事で発見された教会の地下遺構。
ライトアップされた遺構の中に地下室や排水溝、石畳など教会の跡が確認できる。
教会や救助院をつくったド・ロ神父は、農業にも力を注ぎ、女性たちに土づくりから指導した。
キリシタンを祀る神社は日本でも珍しい。
枯松神社では年に一度、キリスト教と仏教、かくれキリシタンが、共に祈りを捧げる。
椿が長崎や五島のキリシタンゆかりの木として大切にされる所以は、バスチャンの伝説にあった。
キリシタンたちはバスチャンが残した4つの予言を信じて、250年もの間、親から子へと信仰を継承していった。
出島に収容されたオランダ人が催した年に一度の大宴会「阿蘭陀冬至」は、実はクリスマスのお祝だった。
墓石の取調べは厳しく、疑わしいものはすべて破壊された。
以降、自然石を置いただけの文字も模様もない墓に葬った。
トードス・オス・サントス教会は、長崎で初めて建った教会である。
当時使われた井戸には、今も水が湧き出ている。
아이들이 살기 위해서 밭을 일구고 기도를 드린 장소.
이국적 풍경을 조망하면서 사키쓰(﨑津) 취락을 천천히 걸어본다.
채석업을 생업으로 해 왔던 돌문화를 지닌 사키우라(崎浦)지역. 가시라가시마(頭ヶ島)성당을 만든 양질의 돌은 돌 다타미(畳:돗자리)와 돌담등에 사용되었다.
「오지카(小値賀) 제도(諸島)의 문화적 경관」은 국립 선정 중요 문화적 경관이다.
「옛날 그대로」의 경관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따뜻함과 인정속에 녹아 들어 있다.
누쿠비(野首)와 후나모리(舟森)의 두 기리시탄 마을을 잇는 약 2.8킬로미터의 험한 시골길은 100년에 걸쳐 신자들이 밟아 다진 기도의 길이다.
노쿠비(野首) 사람들은 소토메(外海)에서 고토(五島)로 이주한 기리시탄들이 시조로 후나모리(舟森) 사람들은 소토메(外海)의 마키노(牧野)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그 뿌리를 찾는다.
미나미 시마바라시(南島原市)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리시탄 묘비가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 정신을 이 매장방법에서 엿볼 수 있다.
미나미 시마바라(南島原)시에 있는 반원 기둥 형태의 기리시탄 묘비. 비문(碑文)이 로마자로 새겨져 서기와 원호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와 관련이 있다는 일본의 동백나무. 야생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고토(五島)에서는 옛날부터 동백 기름이 만들어져 오고 있다.
선한 일을 하면 천국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신자들의 기도 덕분에 천국으로. 묘지는 천국일지 모른다.
산 위로 신도들이 걸었던 길 끝에서 최고의 포상을 받는다.
이 땅에서 나는 돌을 쌓아 올려 만든 드로 담은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130년이나 되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무너지지 않아 그 튼튼함에 놀란다.
키리시탄 순교지이자 성지이기도 한 무인도. 신자들은 성수를 채취하기 위하여 거센 파도를 무릅쓰고 섬으로 간다.
계단식 논 한가운데에 있는 약간 높은 산은 키리시탄 신앙이 지켜져 온 성지.
16세기 취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귀중한 지역. 전국시대 이후 변하지 않는 환경과 삶, 그리고 기도….
멀리 해상에서 볼 수 있는 산은 항로를 통해서 전래된 다양한 종교들의 거점이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