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토메(外海)의 카쿠레 키리시탄 (잠복 크리스찬)

소토메(外海)에는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에도 교회로 복귀하지 않고 잠복시대 이래 지켜 온 신앙을 계속해서 지키는 카쿠레 키리시탄 조직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관련 자산

세계유산(후보)

시츠(出津)성당 시츠(出津)성당
시츠(出津)성당

에도(江戶)막부 말기 소토메(外海)에는 오무라번(大村藩) 영토와 사가번(佐賀藩) 영토가 혼재하여 사가번(佐賀藩) 영역에서는 단속이 비교적 느슨하였다. 에도(江戶)막부 말기에 프티쟝신부가 시츠(出津)를 방문하자 많은 잠복 키리시탄이 신앙을 공공연히 표명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 대한 금지령이 풀리지 않은 것을 염려한 유력자들(신자)는 마을 관리와 협의하여 프티쟝 신부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그룹 (신부파)의 의기를 꺾기 위하여 몰래 간직해 온 미카엘 그림과 십오현의(十五玄義) 그림을 훔쳤다. 이에 대해 신부파는 크게 노하여 큰 소동이 빚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츠(出津) 키리시탄은 두개의 파로 갈라져 한쪽은 다시 잠복하여 카쿠레 키리시탄이 되었다.
현재 소토메(外海) 관광 봉사 안내사 회장을 맡고 있는 마츠카와 류우지(松川隆治)씨는 쿠로사키(黒崎)지구의 카쿠레 키리시탄이다. “메이지(明治) 동란기에 단추를 조금 잘못 채운 것을 계기로 가톨릭과 카쿠레 키리시탄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카미사마”(하느님)를 믿는 마음은 똑같죠.” 카쿠레 키리시탄으로서 소토메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마츠카와씨의 말과 같이, 소토메(外海) 역사의 복잡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