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석벽에서 보이는「견고한 성」

오다(織田)、도요토미(豊臣) 시대에 유행한 초기 석축기술을 하라 성터(原城跡)에서 볼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까지는 성곽 건축의 과도기였다.

관련 자산

세계유산(후보)

하라 성터(原城跡) 하라 성터(原城跡)
하라 성터(原城跡)

예수회 선교사 발리나뇨와 선교사들은 하라 성(原城)에 대해 “그(아리마 하루보누(有馬晴信)가 현재 이주한 곳 보다 좋은 적지로 확실히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이전(移転)을 결정한 곳으로 새로운 성(城)을 구축하기 위해.”라고 예수회의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라 성(原城)은 중세에서 근세에 걸친 성곽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다. 본성(本丸)의 외곽(二の丸), 니노마루(二の丸)를 에워싼 외성(三の丸)은 자연 지형을 살려 흙을 단단하게 만든 중세 성곽 스타일이다. 이에 비해 성(城)의 중심(本丸)은 근세 성곽의 특징중의 하나인 석벽을 사용했다.
석벽은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에 따라 조선출병 때 공격의 발판으로 삼은 히젠나고야 성(肥前名護屋城)과 조선반도 왜성(倭城:일본식 성)의 축성에서 많은 영주들과의 의견을 교섭한 끝에 얻은 기술이었다.
울퉁불퉁하고 직선인 석벽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히데요시(秀吉)시대에 유행했던 초기 석출기술을 뚜렷하게 남겼으며, 머지않아 이 기술은 시대와 함께 세련된 미술감각을 접목시킨「소리:反り휘어짐의 정도」를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