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처음 드리는 미사.

구로시마(黒島)에서 처음으로 미사가 드려졌을 때의 당시 시대 상황은 기독교가 금교령 정책으로 억압을 받았을 때였다. 신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변장을 하고 구로시마(黒島)를 건넜다.

관련 자산

세계유산(후보)

구로시마(黒島)성당 구로시마(黒島)성당
구로시마(黒島)성당

에도시대(1603-1868) 말기 오우라(大浦) 성당에서「신자발견」의 소식을 접한 구로시마(黒島) 잠복 그리스도인은 기쁨에 넘처서 미즈카타(조직의 지도자)을 역임한 데구치(出口) 부자 20명이 신도 대표로 나가사키로 건너왔다. 그리고 선교사에게 “구로시마(黒島)에는 600명의 신도가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다고 전한다. 엄중한 감시속에서도 마치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그 후 신자 대표들은 자주 나가사키로 건너와 선교사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 또한 선교사들도 구로시마(黒島)를 방문하게 되는데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변장하여 어두운 바다를 건넜다고 전해진다.
1872년 어느날 데구치 다이키치(出口大吉)의 집을 임시 성당으로 하여 처음으로 미사가 드려진다. 그 후140년이 지난 구로시마(黒島) 신자들은 그때의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들의 선조는 용기를 가진 신앙 고백을 했고, 누구보다도 먼저 부활을 이루어 냈다”고 하는 이 자랑스러움이 그 무엇보다도 값지며, 매일의 신앙을 지켜주는 힘이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