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페허가 된 성이었는데……

조상 대대로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를 통치해 온 아리마(有馬) 씨가 이 지역을 떠났다. 새롭게 맞이한 영주는 일본의 운명을 좌우한다.

관련 자산

세계유산(후보)

하라 성터(原城跡) 하라 성터(原城跡)
하라 성터(原城跡)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서거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에도 막부(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창설한 무사 정권이다)을 열고 영주들을 다스리게 된다.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는 막부의 신하와 뇌물 사건이 발단이 되어 죽게 된다. 그 뒤를 물러 받은 아들 나오즈미(直純)는 막부의 방침에 따라 기독교를 버리고 영지를 휴가노베오카(日向延岡:미야자키현宮崎県)으로 옮기게 된다. 아리마 지역(미나미 시마바라(南島原)시)는 새로운 영주로 마츠쿠라 시게마사(松倉重政) 맞이하게 된다.
다음 해 막부는 무사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거성(居城)을 하나로 하는「一国一城令:원칙적으로 하나의 영지에 하나의 성(城)만 인정함」을 반포한다. 그리하여 하라 성(原城)도 히노에 성(日野江城)도 폐성이 된다.
아리마(有馬) 씨가 휴가(日向)로 옮긴 뒤 하라 성(原城)의 석벽은 대부분 시마바라 성(島原城)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지는데 1992년(平成4年)에 시작된 발굴조사에서 폭동 당시의 지도와 일치하는 석벽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약 3개월간에 걸쳐 봉기군의 응전을 가능하게 한 것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