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교계와의 대립?

서로「공존」을 바랄 때, 넘어야 되는 벽이 있다. 신앙의 진리는 그것을 가르쳐 준다.

관련 자산

가볼만한 곳

히노에 성터(日野江城跡) 히노에 성터(日野江城跡)
히노에 성터(日野江城跡)

히노에(日野江) 성(城) 중심으로 향하는 계단구조는 불교의 보협인탑(宝篋印塔: 불탑의 한 종류로 묘탑, 공양탑등이 있다)과 오륜탑의 일부가 사용되었다. 그 중에는 금자(金字)가 새겨진 탑도 있다. 의도적으로 디딤돌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당시 기리시탄 영주들의 영지에서는 절과 신사의 불각이 파괴되었고 아리마(有馬)영내에서도 40개 이상이 파손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의 위정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 “파도레 선교사는 왜 신도(神道)와 불교(仏教)의 신사와 절을 부수는가? 승녀들과 왜 융화하지 못하는가”하고 선교사 고레료를 질책했다.
이후에「반천연추방령(伴天連追放令:신부(선교사) 국외 추방령으로 기독교 선교와 포르투칼 무역 금지 내용)」을 내리고 선교사들에게 국외 퇴거를 명령했다.
히데요시(秀吉) 측근으로 알려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은 기리시탄 영주들이다. 히데요시(秀吉)는 시마즈(島津)씨를 항복시켜 천하통일의 다음 단계로 기리시탄 영주들을 잘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추방령이 내려졌지만 포르투칼 무역은 계속되었으며 포교는 묵인되었다. 그러나 10년후 스페인 함선의 표착이 계기가 되어 선교사 26명이 처형되는 사건이 생긴다.